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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감상하고, 예술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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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진호 사진 및 자료 제공 와이넬)

태어나서 이렇게 추운 겨울이 없었다. 필자의 개인 연구실은 와인 셀러를 겸하고 있기에, 겨울에도 난 방을 할 수 없으니 더더욱 겨울나기가 힘들었다. 손이야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온기를 얻지만, 몸속 한 기를 쫓아내기에는 온화한 남방 기후에서 자란 넉넉한 레드 와인만큼 좋은 것이 없다.
오크나무 숲길을 따라 이어진 Paso Robles AVA
1492년 스페인은 크리스토프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신대륙을 300여 년에 걸쳐 식민지로 개척 해 갔다. 영토와 금은보화를 찾기 위한 군대 행렬의 한 편에는 원주민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 한 선교사들이 함께 했다. 이 선교사들은 주요 거주지에 선교회(Mission)를 지었는데, 종교 행사에 사용할 목적의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주변에 포도밭을 개척했다. 현재의 캘리포니아 지역에는 1769 년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후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수사 신부가 샌디에고에 선교회(San Diego Mission)를 설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19세기 중반까지 현재의 소노마 밸리 지역까지 전파됐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의 그 길에는 오크나무 숲이 무성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붙여진 동네와 지역 이름이 ‘오크나무 길’이라는 이름의 ‘파소 로블스(Paso Robles)’다. 1983년에 승인된 파소 로블스 AVA(미국공인포도재배구역)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엔젤레스의 중간에 자리하며, 센트럴 코스트(Central Coast Region)에 속한다. 11개의 하위 AVA 구획이 있을 정도로 토 양, 기후, 지형, 품종 등 많은 부분에 있어 다양성을 포용한 지역이다. 서쪽의 산타 루시아 산맥(Santa Lucia Range)과 동쪽의 라 판자 산맥(La Panza Range)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지형으로, 여름에는 산타 루시아 산맥의 템플턴 갭으로 태평양의 차가운 바람이 파소 로블스 지역에 불어온다. ‘템플턴 갭 효과(Templeton Gap Effect)’로도 알려진 이 자연 현상은 큰 일교차를 일으키며, 이상적인 포도 재배 환경을 만들어낸다. 중신세(Miocene Era) 후기에 융기된 고대 해저 지대에 놓여 있는 이 와인 산지에 는 다른 캘리포니아 AVA보다 월등하게 많은 석회질과 규산질 토양이 있다. 수백만 년 동안 퇴적된 바다 생물의 뼈와 껍질이 세월에 따라 압축돼 파소 로블스의 토양은 풍 부한 칼슘을 함유한다. 이러한 토양적 특성은 포도가 자연스러운 산 도를 간직하게 도와주며, 파소 로블스의 와인에서 풍부한 타닌과 향 긋한 과일 맛이 균형을 이루는 순수함으로 나타난다. 파소 로블스 전체 포도나무의 절반 이상은 까베르네 소비뇽과 보르 도 품종이지만, 최근 론 품종 생산지로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파소 로블스에서는 무려 60여 종이 넘는 포도 품종이 생산되며, 전 형적이지 않은 독창적인 블렌딩으로 뛰어난 평가를 받는다. 21세기에 들어와 지난 20여 년 이상 계속된 파소 로블스 지역의 ‘지속가능한 농업’ 실험으로 많은 포도원들이 유기농 인증을 받았으며, 재생산성 유기농 인증인 ROC(Regenerative Organic Certified)에도 도전하 고 있다. 이달의 주인공인 부커 빈야드는 이 지역에서 환경 보호에 앞 장서며 고품질 소량 생산에 주력하는 부티크 와이너리다.
도시의 브로커에서 농부로 변신한 Eric Jensen
부커 빈야드는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가 파소 로블스 시티 서쪽 46번 고속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앤더슨 로드에 위치한 소규모 가족 소유 부티크 와이너리다. ‘부커(Booker)’라는 흔지 않은 이름은 1920년대 후반 이 땅을 구입한 두 고아 형제, 클로드와 딕 부커(Claude&Dick Booker)에서 유래했다. 성실하게 일했던 부커 형제는 파소 서쪽 지 역에 480여 ha에 이르는 토지를 확보했다. 부커 형제는 파소 로블스 의 자랑이자, 훌륭한 농부이자 인도주의자로 평생을 바쳤다. 이웃과 어려운 이들에게 농업 지식과 노동을 아낌없이 제공했을 뿐만 아니 라, 이 지역 최대의 자선가로서 1990년 딕이, 2000년 클로드가 세상 을 떠날 때 유산의 100%를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이들의 농업에 대 한 비전과 지역 사회에 대한 인도주의적 기여는 후일 이 땅에 포도나 무를 심으며 정착한 에릭 젠슨 부부의 농업 철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특별한 땅을 구입한 주인공 ‘에릭 젠슨’은 매우 특이한 이력의 소 유자다. 2026년 현재 58세의 에릭은 부동산 신탁 판매 중개인 출 신이다. 그는 중개업자(Broker)이자 콘서트 프로모터(Concert Promoter)로 성공했으며 캘리포니아 뉴포트 비치(Newport Beach) 의 게이트 커뮤니티에 큰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중개업은 본질적으 로 투자금을 모으기 위한 콜드콜 업무였다는데, 그는 그 일을 잘했 지만 타인의 자금을 다루는 것에 점점 환멸을 느끼게 됐다고 한 다. 어느 날 그는 공원에서 아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보모들에 둘러싸여 있는 자신을 보며 깨달았다. “이 삶이 싫어~!” 에릭은 변화가 필요했다. 그때 새로운 분야인 콘서트와 페스티 벌 프로모션에 뛰어들게 됐는데, 그의 직업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VIP 구역에 어떤 와인이 비치돼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여기 서 그는 미래의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미련없이 저택을 팔고 파소 로블스로 이사해 농부가 된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정원사와 수영장 관리인을 두고 살았던 사람이 농부가 되기는 쉽지 않았기에, 2000년, 젠슨과 가족이 파 소 로블스로 이사했을 때, 이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던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제거리였다고 한다. 그러나 곧 그는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에 몰두하게 됐고, 강의를 듣 고 책을 읽으며 삭섬(Saxum) 와이너리의 저스틴 스미스(Justin Smith)와 어울렸다. 처음에 젠슨은 충동적으로 양질의 포도를 생산 할 수 없는 35ha의 땅을 구입했다. 처음이니 실망하지 않았다. 그러 나 그와 스미스가 파소 서쪽에 위치한 바위투성이,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을 가진 부지로 차를 몰고 들어간 날, 그는 대박을 터뜨렸다. “우 리는 크고 경사진 언덕을 봤기에 수확량을 조절할 수 있을 거라 확 신했습니다. 게다가 언덕의 굴곡이 많아 모든 방향이 다르게 노출돼 있어 어떤 포도 품종도 심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죠.”라고 젠 슨은 회상했다. 에릭과 리사 젠슨은 2001년 이 부지 중 약 40ha를 매입해 지역 최 고의 와이너리들을 위한 최상급 포도를 재배할 계획을 세웠다. 젠 슨 부부는 지역 와인 제조업체에 포도를 공급하는 재배자로 시작 해 포도 품질로 점차 명성을 쌓았다. 2005년부터 자체 포도로 와 인을 양조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그들은 파소 로블스의 유명 생산 자들에게 포도를 판매했다. 삭섬(Saxum) 와이너리의 저스틴 스미 스(Justin Smith)와 5년간, 아방뛰르(L’Aventure Wines) 와이너리 의 스테판 아쎄오(Stephan Asseo)와 2년간 포도를 공급하며 와인 을 함께 만든 후, 젠슨 부부는 ‘부커 빈야드’로 자신들만의 표현을 창 조할 때가 왔다고 결심했다. 2005년, 젠슨은 자신의 포도밭에서 생 산된 강렬하고 익은 풍미의 와인을 선뵈는 부커 레이블을 출시했다. 포도원과 와인 모두 이 부지의 원래 소유주였던 클로드와 딕 부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2005년 빈티지는 부커 빈야드의 첫 출시작으 로, 와인은 소유주 에릭 젠슨이 직접 제조했다.

파소 로블스의 신예 부티크 와이너리, BOOKER
부커 빈야드는 파소 로블스 AVA 소재, 템플턴 갭 지구(Templeton Gap District) 경계 근처, ‘윌로우 크릭 지구(Willow Creek District)’ 에 있다. 이 지역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산타 루시아 산맥의 템플 턴 갭으로 태평양의 차가운 바람이 파소 로블스 지역으로 불어오는 ‘템플턴 갭 효과(Templeton Gap Effect)’로 큰 일교차를 일으키며, 이상적인 포도 재배 환경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70 년대 UC-Davis 대학팀이 파소 로블스 지역을 캘리포니아 최고의 론 품종 와인 생산지로 발표하자, 1990년대부터 이른바 ‘론 레인저 (Rhone-Rangers)’를 표방하는 신세대 생산자들이 모여들었고, 일 약 가장 주목받는 산지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당연히 부커 와이너리 도 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르 등 적포도 품종에 중점을 두고 론 밸 리 품종으로 다양한 와인을 생산한다. 부커는 주로 레드 론 품종을 재배하며, 생산 와인의 2/3 이상이 론 품종 와인이다. 그러나 까베 르네 소비뇽과 템프라니요 같은 다른 품종도 소량 재배되며, 부커의 유일한 화이트 와인 병입에 사용되는 루산느, 비오니에, 마르산느 같은 화이트 론 대표 품종도 함께 재배하고 있다. 초기에 부커 빈야드는 이 지역의 독특한 테루아를 보여 주는 고품질 의 한정 생산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와이 너리는 석회질 셰일(Calcareous Shale) 토양을 가진 가파른 바위투 성이의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곳의 독특한 토양과 기후 조건과 함께 포도에 풍부하고 강렬한 풍미를 선사한다. 부커는 자체 포도원 에서 재배한 포도로만 와인을 생산해, 각 병이 파소 로블레스 테루 아를 진정으로 반영하도록 보장한다. 부커 빈야드는 설립 이래 전세 계의 와인 애호가들을 감탄시킨 여러 뛰어난 와인을 생산해 왔으니, 특히 풀바디에 과일 풍미가 풍부한 레드 와인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와인 중 하나인 시라(Syrah)는 자체 포도원에서 재배한 포 도로 생산된다. 이 와인은 풍부하고 진한 과일 향과 탄탄한 타닌 구 조로 알려져 있으며, 강렬하고 오래 지속되는 여운을 선사한다. 또 한 과일과 타닌의 황금 균형미를 추구하는 까베르네, 상쾌하고 청량 한 비오니에-루싼느 화이트, 풍부하고 강렬한 쁘띠뜨 시라, 그리고 짙고 강렬한 풍미로 유명한 독특한 마타로(Mataro=Mourvedre)도 생산한다. 젠슨은 초기에 구입한 부지 중에서 12ha 규모의 땅을 매각했으며 (현재, 토린 Torrin Winery 소유), 남은 30ha 중 18ha에 시라, 그르 나슈, 무르베드르, 카베르네 소비뇽, 프티 베르도 품종을 주로 재배 하고 있다. 양조장 소유 밭의 대부분은 자체 브랜드 생산에 활용하 며, 다른 생산자들에게도 계속해서 포도를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삭섬(Saxum), 린 칼로도(Linne Calodo), 클로 솔렌(Clos Solène) 등이 부커 밭의 포도를 공급받는 대표적 와이너리다. 부커의 연간 생산량은 약 4500케이스로 제한되며, 프리미엄 라인의 대부분은 메 일링 리스트를 통해 판매된다.
포도밭을 누비는 카우보이, Eric Jensen
부커 빈야드에서는 와인 제조 과정에서 완벽한 균형을 추구하며, 포 도원의 특성을 진정으로 드러내는 와인 생산에 전념하고 있다. 특히 에릭은 캐노피 관리와 수확량 조절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포도를 가꿨다. 아마도 그것이 부커 와인의 품질을 보장하는 길이라는 확 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21세기의 와인메이커답게 에릭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에도 매우 민감했다. 그는 필자에 게 “기상 이변은 ‘무섭게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태양이 뜨 겁고 무덥습니다. 밤도 전처럼 않아 걱정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포 도가 햇빛에 타지 않도록 ‘그늘막 천(Shade Cloth)’를 실험 중이라고 했다. “나파밸리에서 2010년부터 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2024년 부터 실습 중이죠. 남쪽향 포도를 천으로 가려서 뜨거운 햇볕을 피 하게 합니다. 추가 곁가지를 남겨 두어 햇볕을 가리기도 합니다.” 변 화를 인정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젠슨 씨의 명석함에 감탄했다. 그는 창립 초기부터 합성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포도를 재배하는 데 헌신해 왔으며, 대신 땅을 존중하는 지속가능한 농법 에 집중해 왔다. 에릭은 보조 와인메이커와 함께 탁월함에 대한 헌 신으로 양조 과정을 이끌며, 비오디나미 생태역학 농법과 같은 방법 을 활용해 포도밭의 균형을 유지하고 토양과 포도나무의 건강을 보 장하는 지속가능하고 책임감 있는 농업 실천에 전념하고 있다. 포도 밭 바닥에는 피복 식물을 심어 여름 땡볕에 햇볕이 과도하게 반사되 는 것을 방지하고, 자연 비료를 만들어 준다. 또한 때가 되면 양떼를 수백 마리 풀어서 피복 작물을 뜯어먹게 해서 풀 높이를 관리하고, 그들이 배변을 함으로써 자연 퇴비를 밭에 남길 수 있도록 한다. 이 러한 노력으로 2021년 CCOF 유기농 인증을 받으며 그 품질을 인정 받았다. 필자가 만난 젠슨 씨는 매우 유쾌하고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목소리가 기차 화통처럼 크고 허스키해서, 필자는 그에게 “당신은 서부 영화에 나오는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쏙 빼 닮았네요.”라 고 하니 매우 기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젠슨 씨는 자신이 트랙터 를 매일 같이 얼마나 자주 운전하는지, 그리고 포도밭의 모든 길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리고 옛날에는 도시인 이었지만, 이제는 ‘완벽한 농부’라고 가슴을 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이곳은 눈부시 게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서쪽으로 경사진 언덕과 무성한 포도밭, 그때는 완전 신참이었죠~!^^” 그의 허스키 보이스가 아직도 귓전을 울린다.

왼쪽이 에릭 젠슨, 오른편은 아방뛰르 와이너리의 스테판 아쎄오

마이 페이버릿 네이버, 까베르네 소비뇽 'My Favorite Neighbor', Cabernet Sauvignon, Paso Robles AVA
와인 이름이 참 근사하다. ‘나의 친근한 이웃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이런 이름에 쉽게 마음이 열린다. 농업과는 전혀 관계없던 도시의 일과 삶을 살았던 에릭 젠슨은 무작정 내려온 파소 로블스의 시골 생활이 무척 난감하고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 그에게 따뜻한 도움을 준 손길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이 페이버릿 네이버 와인은 부커 빈야드의 존경하 는 이웃들 저스틴 스미스와 스테판 아쎄오에 대한 오마쥬 와인으로 탄생했다. 아울러 포도는 파소 로블스 AVA뿐만 아니라, 인근의 샌 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 카운티와 남쪽 에드나 밸리(Edna Valley)의 뛰어난 밭 포도가 들어 있다. 초창기 에는 자체 에스테이트에서 재배한 포도만으로 극소량 생산됐으나, 최근에는 인근 이웃 생산자들이 재배한 최상급 포도도 일 부 선별해 블렌딩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우리 이웃이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서 포도밭을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이웃 농부들의 노력과 헌신 덕분에 탄생했다.’는 의미도 이름에 담고 있다. 이웃 공동체 안에서 도움을 주고 받는 경험 속에 만든 와인은 단순한 ‘고급와인’들 보다 훨씬 뛰어나고 의미가 있다. 필자가 시음한 2022 빈티지 와인은 까베르네 소비뇽 83%, 쁘띠 베르도 7%, 말벡 7%, 쁘띠뜨 시라(Petite Sirah) 2%, 시라 (Syrah) 1%가 블렌딩됐다. 새 프랑스산 오크통 55%와 중고 오크통 45%에서 약 18개월간 숙성시켰다. 선명한 보랏빛을 띠는 짙은 루비색은 와인의 농축도를 보여 주며, 블랙 커런트와 블루베리, 장미꽃과 정향, 바닐라와 은은한 후추, 그리고 미네랄 뉘 앙스가 세련된 와인 양조 기술을 보여준다. 한 모금 입안에서 느껴지는 첫 산미의 산뜻함과 14.8%vol으로 이어지는 알코올의 따스함이 근사한 감촉을 선사하며, 풍요로운 타닌과 짙은 내용물, 정교한 구조감이 집중도를 높여주는 풀바디 레드 와인이다. 빳빳한 타닌과 벨벳 감촉의 부드러운 질감이 교차하는 신기한 복합미는 고도로 신경쓴 블렌딩의 결과라 생각된다. 파인 다이 닝의 채끝 등심 스테이크, 미디엄 구이한 양고기, 버섯 구이, 중경성 치즈 등과 황홀한 조화가 예약된 와인이다2. 021 빈티지는 James Suckling 94점을 받았다.

프랙처 'Fracture', Syrah, Paso Robles AVA
부커의 최상위 대표작으로 곧잘 언급되는 프랙처는 세계적인 시라 와인 중 하나다. 배럴에서 숙성되고 있는 원물 중에서 오직 가장 부드러운 시라만이 이 농후하고 강력한 와인의 기준을 충족한다. 도발적이게도 ‘Fracture(균열)’이라고 지어진 이름은 부 커 포도원의 석회석 토양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석회석의 균열을 통해, 석회질 하부토양이 만들어지고, 그 균열을 뚫고 포 도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려 미네랄을 섭취하기 때문이 아닐까. 뜨거운 캘리포니아의 태양볕에도 불구하고 프랙처가 가진 산 미와 신선감은 석회석 토질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 더불어 프랙처를 만든 양조법은 다소 특이하게도 ‘홀 베리(Whole Berry)’ 침용 발효 기법이다. 혼동할지도 모르겠지만, Whole Cluster 발효법과는 다르다. 포도 줄기 스템은 제거하되, 포도알은 터뜨리 지 않고 통째로 넣어 발효시킨다. 농축된 풍미와 훌륭한 질감을 보이면서도 충분한 신선미를 간직한 와인을 만드는 파소 로블 스 생산자들의 고유한 기법이다. 그래서 ‘Paso Whole Berry 기법’이라 부른다. 필자가 시음한 2019 빈티지 프랙처 와인은 시라 100% 레드 와인으로서, 새 프랑스산 오크통 70%와 중고 오크통 30%에서 약 18개월간 숙성 후 출시됐다. 흑장미를 연상시키는 잉크빛 블랙 컬러가 매우 고혹적인 글라스 안에서는 파소 시라의 향기가 진 동한다. 블랙베리와 블랙 체리, 커런트의 밀도 높은 과일향이 압도적이며, 바닐라, 토스트, 다크 초콜릿이 오크 숙성을 말해 준 다면, 뚜렷한 정향과 제라늄 잎새 내음이 시라의 DNA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추와 육두구, 올리브 등 이 국적인 향신료가 등장하며, 아스름한 말미에 향긋한 카라멜과 흑연, 탄 재 향도 스며 나온다. 한 모금 머물면 입안 가득 풍성 한 시라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풍미는 향과 일치하지만, 이 우아한 거인의 압도적인 무게감, 풍성함을 받 쳐주는 백댄서와 같다. 풍부하고 촘촘한 질감에 입안 가득 퍼지는 섬세한 타닌의 층이 느껴진다. 석회석 미네랄감을 깔며, 1분 가까이 지속되는 긴 여운이 웅장한 프랙처는 에스프레소와 구운 립아이 스테이크의 풍미까지 쫄깃하게 남기며 퇴장하는데, 음식 없이 이미 음식을 먹은 맛이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에 취한 체리와 감초, 다크 초콜릿의 풍미가 있어 이 와인과 함께 디저트로 바로 넘어가고 싶은 유혹도 느껴진다. 티본 스테이크, 피에몬테식 오소 부코나 진한 버섯 파스타와도 잘 어울릴 것 이다. 2019 프락처는 Jeb Dunnuck 97점, Vinous 97점, Wine Advocate 96점을 받았다.